일곡기념사업회
 
 
       
 
 
  제10회 일곡유인호학술상 수상소감문
  글쓴이 : 관리자     날짜 : 18-05-15 22:56     조회 : 520    

수상소감

 

박 승 호

 

많이 부족한 저의 책 자본론 함께 읽기에 일곡유인호 학술상을 수여한 일곡기념사업회와 일곡학술상 심사위원님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유인호 선생님은 1970년대 저의 대학시절에 박현채, 리영희 선생님과 함께 저희들에게 참다운 지성인, 실천적 지식인의 사표였습니다. 당시 유신 치하의 암울한 시절에 저희 젊은 세대는 선생님들로부터 직접 강의를 듣고 만나뵐 기회는 없었지만 선생님들의 저술을 통해 의식화 세례를 받았고, 학생운동에 뛰어들었습니다. 또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를 바꾸었습니다. 저도 그런 많은 학생들 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간접적이었지만 실질적 스승의 역할을 하셨던 유인호 선생님의 높은 학문과 실천을 기리는 학술상을 받게 되어 제가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사실 내년에 예순인 제가 신진연구자에게 수여되는 이 학술상을 받게 되어 조금 쑥스럽습니다. 지난 시기 저는 노동운동, 노동교육활동 등으로 학술연구에 전념할 수 없었습니다. 1985년 석사논문을 마치고 노동현장에 들어가 활동가로서 복무하였고, 2004년 박사논문을 쓴 후에는 전태일노동대학에서 노동교육활동에 집중했습니다. 제가 학술연구에 전념하게 된 것은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 후인 2014년부터입니다. 이때부터 정치경제학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경상대와 성공회대 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그동안 미뤄놓았던 학술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저는 나이와 관계없이 신진연구자인 셈입니다. 신진연구자로서 이 학술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학술연구에 더욱 정진할 것을 다짐해 봅니다.

 

자본론 함께 읽기는 마르크스의 자본론1권에 대한 대중적인 안내서 겸 해설서입니다. 제가 지난 시기 노동교육과 강의를 위한 연구과정에서 쌓인 내용을 종합하고 정리한 책입니다. 제가 이 책을 쓴 것은 2008년 세계금융공황 이래 세계자본주의의 총체적 위기가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정세에 대한 대응이었습니다.

세계경제위기는 점차 신자유주의의 위기를 넘어서서 자본주의 자체의 위기임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현재의 세계경제위기가 자본주의 역사상 네 번째의 구조적 위기라는 점과 인류절멸로 나아갈 수 있는 세계적 규모의 전쟁을 초래할 위험에 대해 저는 201521세기 대공황의 시대라는 책을 통해 밝히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자본주의의 제4차 구조위기 하에서 헬조선흙수저로서 고통받고 절망하는 이 땅의 젊은 세대, 청년 노동자와 대학생들에게 희망과 꿈, 전망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조언하고 싶었습니다. 2008년 이래 지속되고 있는 세계장기불황으로 인해 전 세계 노동자민중은 생활파탄과 전쟁, 그리고 테러에 의해 고통받고 있습니다. ‘헬조선일 뿐 아니라 헬지구인 것입니다. 저는 헬조선흙수저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근본적인 원인이 자본주의 자체에 있고, 따라서 헬조선의 대안이 탈조선이 아니라 탈자본주의에 있다는 점을 젊은 세대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저는 이를 알리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젊은 세대가 마르크스의 자본론1권을 읽어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자본주의 자체를 근본적이고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입니다.

 

젊은 세대가 자본론1권을 읽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저는 세 가지 측면에서 노력했습니다. 첫째는 서술 순서를 자본론의 순서와 다르게 맨 뒤의 제8편부터 시작하고, 그 후 제1편부터 제7편의 순서로 해설한 점입니다. 마르크스 자신도 인정했듯이 제1상품과 화폐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본론1권을 읽으려 도전했다가 제1편에서 막혀 더 이상 읽지 못하고 포기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런 어려움을 덜기 위해 자본론1권의 순서를 거꾸로 읽는 것은 마르크스 당대에 자본론1권이 너무 어렵다는 사람들의 하소연에 대해 마르크스 아내 예니 마르크스가 추천했던 방법이기도 합니다.

 

둘째는 자본론1권의 독일어판(영어판)을 기본으로 하되 불어판을 참조해 마르크스가 불어판에서 중요하게 수정하고 대체한 부분을 반영한 점입니다. 마르크스 자신이 자본론1권을 직접 교열한 최종본은 제2독일어판(1873)이 아니라 불어판(1872~1875)입니다. 그런데 마르크스 사후 엥겔스가 제3독일어판을 출간하면서 불어판에서 마르크스가 수정한 것을 충분히 반영하지 못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제2독일어판의 중요한 오류와 실수를 불어판에서 바로잡았는데, 이를 엥겔스가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한 마르크스는 제2독일어판의 애매한 서술, 추상적이고 사변적인 서술을 불어판에서 대부분 수정하고 보완해 명료한 서술로 바꾸었습니다. 이것도 엥겔스에 의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불어판 전체를 대조하지는 못했지만, 독일어판에서 이해가 되지 않거나 애매한 부분을 불어판과 대조해 마르크스가 수정한 내용을 찾을 수 있었고, 이를 반영함으로써 젊은 세대가 자본론1권을 더욱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셋째는 자본론1권을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한 점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자본론해설서나 입문서가 자본론을 경제학 이론으로 왜소화시켜 경제주의적으로 또는 구조주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을 비판하는 입장입니다. 저는 마르크스가 역사유물론의 인간해방사상과 방법론을 자본주의 분석에 적용해 집필한 것이 자본론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그 반대의 측면도 있습니다. 자본론을 통해 마르크스는 자신의 역사유물론을 더욱 정교화하고 발전시킬 수 있었습니다. 어느 측면이든 자본론에는 마르크스의 역사유물론이 관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역사유물론의 관점에서 자본론1권의 맥락을 해설했습니다. 이를 위해 마르크스가 자본주의 분석에서 고전파 정치경제학을 비판하고 과학성을 획득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자본주의 사회의 상품 물신숭배 현상을 발견하고 해명한 점이라는 것, 그리고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의 변화발전을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상호작용과 모순이라는 맥락에서 계급투쟁 요인을 통해 분석한다는 점 등을 밝히려 노력했습니다. 이를 통해 젊은 세대가 자본주의의 변화, 발전의 원동력이 계급투쟁임을, 따라서 자신들이 역사의 주역임을, 그리고 자본주의는 자신들의 계급투쟁에 의해 극복될 수밖에 없는 과도기적인 생산양식임을 자각할 수 있도록 해설했습니다.

 

2008년에 시작된 제4차 구조위기인 21세기 세계장기불황은 각국에서 사회 양극화에 따라 사회정치적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를 촉발하고 있습니다. 2016년을 경과하면서 이제 제2국면으로 전환해 자본주의의 모순을 전 방면에서 격화시키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각국에서 계급투쟁은 다양한 형태로 격화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촛불혁명도 이런 세계적 흐름의 하나입니다. 이런 역사의 대전환기에 부응하여 사상이론 전선의 이데올로기투쟁에서 유인호, 박현채, 리영희 선생님이 당대에 그러하셨듯이 한 사람의 투사로서 역사적 책무를 다할 것을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감사합니다.

    

2017514